Nov 26. 2003 | 청담동에 위치한 복합미용공간 엔프라니 애비뉴에서는 12월 6일까지 인형작가 백혜순 개인전을 개최한다. 회화, 사진, 공예,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중인 작가를 선별해 전시공간을 제공해온 엔프라니 애비뉴의 9번째 실험문화인으로 선정된 백혜순은 이번 전시에서 아기, 청소년, 동자승, 할머니와 손녀, 엄마와 딸 등 다양한 모습의 인형들을 선보였다.
전인교육을 표방하며 1919년 설립된 독일 발도르프 학교에서 유래한 발도르프 인형은 감자처럼 둥글둥글 수더분한 얼굴, 조그만 점으로 표시된 눈, 통통한 몸통 등 그 겉모습이 지극히 단순해 보인다. 대량생산된 플라스틱 인형과 달리 헝겊으로 피부를 만들고 솜을 단단하게 채워 넣어 만들기 때문에, 적당한 무게감이 있고, 안으면 안정감이 생겨 마치 진짜 아기를 대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장난감 가게에 가면 우유를 먹고 오줌도 싸는 아기인형, 말을 하는 봉제인형, 화려한 옷 갈아 입히는 재미가 쏠쏠한 바비인형 등 신기하고 다채로운 인형들이 많지만, 소박한 발도르프 인형 속에는 대량생산된 인형들과는 다른 특별함이 숨어 있다.
전인교육의 철학 담은 발도르프 인형
발도르프 인형은 나뭇조각이나 돌멩이에서도 사람의 형상을 발견하고 의인화하는 눈을 간직하고 있는 아이들에게 특히 사랑을 받는다. 점으로 간략하게 묘사된 인형의 표정은, 쉽게 싫증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감정을 이입할 수 있는 대상이 된다. 이 과정에서 인형은 주체적 삶을 형성하는 과도기적 단계의 매개체로 기능한다. 상상의 날개를 펼치면서 자신의 갈등이나 불만족을 해결하는 것이다. 독일어로 인형을 의미하는 ‘puppe(n)’은 번데기라는 뜻도 갖고 있는데, 실제로 아이들이 상상력의 힘을 빌어 인형 속에서 생명력을 이끌어내는 모습은 번데기의 탈피보다 경이롭다.
만드는 방법이 단순하기 때문에 발도르프 인형들은 누가 만들어도 외관상으로는 비슷하게 보인다는 한계점이 있다. 독창적인 개인작업을 중시하는 작가의 입장이라면 이런 점이 부담스러울 법도 하다. 대부분의 발도르프 인형 작가들이 발도르프 인형의 교육적 취지에 공감해 과다한 세부묘사를 생략하지만, 인형에 담긴 철학을 떠나 인형 자체만을 감상하게 되는 일반 관람자들을 배려해 좀 더 다양한 복장과 소품을 사용해 연출한 것이 이번 전시의 특징이다.
엄마 손으로 만들어 더욱 정겨운 '인형 동생'
백혜순은 “아이가 자라 맞지 않는 유아 때 옷을 재활용해 인형에게 옷으로 만들어 물려주면 마치 친동생처럼 몰입하고 아낀다. 이는 엄마가 아이에게 직접 만들어주는 수제 인형이기에 가능한 것”이라며 단순함 속에서 생명력을 발견해내는 발도르프 인형의 의미를 설명했다. 관람자의 입장에서는 손으로 직접 만든 따뜻한 수제인형을 감상하는 것만으로 부담 없이 전시를 즐길 수 있을 것이다.
본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부대행사로 11월 28일 오후 6시 ‘작가와의 만남’과 더불어 애니메이션 ‘원령공주’를 상영할 예정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9시까지, 문의전화는 02-518-2722(내선번호 3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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