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10. 2003 |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에서는 2004년 1월 4일까지 설치작가 함연주의 ‘올’전을 개최한다. 1998년경부터 머리카락으로 드로잉을 하거나, 오브제에 붙여 사물의 생경함을 강조해온 함연주는, 이번 전시에서 거미가 그물망을 짠 듯한 설치작업을 선보인다. 이를 위해 그는 11월 초부터 사루비아다방에 매일 출근하듯 들러 거미줄처럼 가느다란 머리카락 그물을 짜 왔다.
갤러리의 문을 열고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관람자는 기묘한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작품’이라고 부를 만한 익숙한 사물은 단 한 점도 없다. 대신 마치 오래된 성의 비밀통로에 들어섰을 때처럼 무성한 거미줄만이 전시장 구석구석을 잠식하고 있다. 이 거미줄은 무한히 증식하는 생명체처럼 사방으로 뻗어 나간다. 빠져나간 자신의 머리카락만 재료로 사용하는 함연주는, 이번 전시를 위해 6년여 동안 머리카락을 모았다. 일부러 뽑은 것도 아니고, 자연적으로 빠져나간 것만 사용한다니 어떻게 그 많은 머리카락을 모았을까 싶지만, 샤워할 때나 청소할 때 집 구석구석에 떨어진 것을 주워 실패에 감아뒀다 재료로 쓴다고.
공간 위에 펼쳐지는 거미줄 드로잉
전시 오픈 하루 전인 9일 갤러리를 찾았을 때도 함연주는 여전히 머리카락으로 그물을 짜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80cm는 족히 된다는 긴 머리카락을 동그랗게 틀어 올리고, 손에는 머리카락을 돌돌 감은 조그만 실패를 든 채 머리카락과 머리카락 사이를 연결하고, 사다리를 밟고 올라가 천장에 붙이기도 하면서 고요하고 분주하게 움직인다. 마치 거미가 자신의 몸에서 단백질로 된 실을 뽑아내 투명하고 아름다운 집을 만들듯, 함연주 역시 자신의 몸에서 빠져나온, 이제는 생명력이 다한 단백질 덩어리를 재료로 공간을 채워나간다.
그의 작품은 머리카락으로 만든 탓에 공포감이나 혐오감을 불러일으킬 것 같지만, 예상외로 아름답다. 이는 거미줄에 매달린 투명한 물방울 때문이다. 마치 이슬처럼 영롱하게 빛나는 이 물방울은 묽은 FRP용액을 붓으로 5∼6 차례 발라 만든 것이다. 이렇게 처리하면 가느다란 그물망 사이의 응집력도 커지고 부피가 생겨 더욱 견고해지지만, 무엇보다 FRP용액이 머리카락 위에 맺혀 빛을 반사하면서 마치 보석처럼 빛나게 된다. 투명한 액체를 묻힌 붓을 들고 허공에 붓질을 하는 함연주의 모습은 마치 공간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 같다. 그의 설치작품을 ‘공간 위에 펼친 거미줄 드로잉’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연약한 것,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애정
작품의 특성상 조명이 밝고 화려한 갤러리 안에서는 어울리지 않기에 함연주의 머리카락 설치작품은 어둡고 구석진 곳을 향한다. 또한 무작위로 머리카락 그물을 엮으면서 공간을 채워나가기 때문에 철저히 혼자 진행할 수밖에 없다. 그가 거미줄을 엮으면서 지나간 자리는 수없이 반복된 노동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함연주는 상당한 인내력과 시간을 요구하는 이 작업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힘겨운 수공예적 제작 과정을 거쳐야 하고 작품이 어떻게 완성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서도 그가 편안함을 느끼는 건, 그의 작업이 일종의 모태공간과 같은 ‘상징적인 둥지’를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몸에서 빠져나가면 쓰레기 취급을 받는 머리카락이란 재료의 속성은, 전시가 끝나고 나면 해체되는 설치미술의 속성과 많은 부분 닮아 있다. 한 때 몸의 일부였지만 이제는 쓸모 없게 된 머리카락을 엮어 공간을 채우는 일은 소멸하는 것에 대한 애정을 수반한다. 그 둥지는 연약해 보이지만, 하찮고 사소한 것들이 서로 어깨를 기댈 때 이처럼 강하고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을, 고요한 몸짓으로 보여준다.
본 전시의 부대행사로 12월 19일 오후 4시에 작가와의 대화 시간이 마련된다. 전시 관람료는 없다. 문의전화 02-733-0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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