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 12. 2003 | 19세기 들어 사진이란 막강한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그 입지가 다소 흔들리긴 했지만, 과거로부터 변함 없이 사람들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장르를 하나만 꼽으라면 아마 초상화가 되지 않을까 싶다. 르네상스 이후 개인 존재에 대한 자각이 깊어지면서 본격적으로 부흥한 초상화는 현대미술의 유형이 다양하게 세분화된 오늘날에도 그 매력을 쉬 잃지 않는다. 특히 사실주의적 초상화는 개념미술처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리거나, 추상회화처럼 난해한 형상의 미로에서 헤매지 않아도 될 거라는 확신을 주기 때문에, 대중에게 꾸준히 인기를 누리는 분야 중 하나다.
세대 속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인간 유형 탐구해
이처럼 가장 친숙한 초상화를 소재로 했으면서도, 형식면에서 새로움을 추구해 눈길을 끄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인사동 갤러리상에서 11월 17일까지 열리는 서양화가 김상우의 ‘인물회화연구’전이 그것이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상트 페테르부르크 러시아 국립미술학교를 거쳐 현재 중앙대학교 대학원에 재학중인 작가는 통산 5번째 개인전인 이번 전시에서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그린 인물화 연작 ‘Generation’을 비롯해 근작 38점을 선보였다.
연작의 제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김상우가 불특정 다수의 초상화를 통해 추구하는 것은 나이, 성별, 시대, 직업, 거주환경 등 세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지는 인간의 유형을 채집해 형상화하는 일이다. 예컨대 ‘Generation’(2003)은 사실적으로 그려낸 노인과 소년의 모습을 대비시키면서 구세대와 신세대가 처한 상황의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가장 먼저 시선을 끄는 것은 디즈니 캐릭터가 현란하게 그려진 주황색 옷을 입은 소년이다. 도전적으로 치켜 뜬 소년의 눈이 바라보는 방향을 따라가면, 빛 바랜 구식 양복을 입고 고개 숙인 채 걷는 노인과 만나게 된다. 자전거를 타고 빠른 속도로 달려가는 소년은, 낙엽처럼 느릿느릿 걷는 노인을 뒤로 제치고 어느 순간 앞으로 휙 나아갈 것이다. 이 작품은 한 장의 스냅사진처럼 일상적인 화면 속에 마치 속도가 서로 다른 컨베이어벨트를 타고 앞으로 나아가는 듯한 노인과 소년의 모습을 대비시켜 긴장감을 상승시키며 세대간의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지금, 여기’ 살아가는 평범한 한국인의 초상
작가의 이러한 시도가 보다 적극적으로 표명된 것은 등신대에 가깝게 제작된 ‘世代 - Generation’(2003) 연작이다. 작가는 인물의 유형 분석에 초점을 맞춰 배경 그림은 모두 지워버리고 인물의 모습만을 부각시킨다. 그림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사람들은 마치 시대의 증인처럼 정면을 응시하며 우뚝 서 있다. 배꼽티를 입은 아가씨, 줄무늬 몸빼에 꽃무늬 셔츠를 입은 아줌마, 서류가방을 든 회사원, 교복 차림의 소녀 등 사실적인 필치로 그려진 이들은 금방이라도 그림 속에서 걸어나올 것만 같다.
무지개의 일곱 가지 색깔 무지개의 일곱 색깔을 모티브로 한 또 다른 작품에서는 배경 색채에 모델의 성향, 감정을 이입해 표현한 감각이 돋보인다. 예컨대 화장삼매경에 빠진 여성의 내밀한 욕망은 강렬한 빨강으로, 오렌지족을 연상시키는 날라리 청년의 모습은 오렌지색으로 그려진다. 이밖에도 어린 소녀의 풋풋함을 담은 노란색, 예술가의 광기를 상징하는 보라색 등 색깔마다 상징하는 의미가 달라 흥미롭다.
본 전시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으며, 관람시간은 오후 6시까지다(전시 중 무휴). 문의전화 02-730-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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