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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마을 지키는 수다쟁이 길고양이 “여기가 한참 잘 나갈 때는, 지나가던 개도 만 원짜리를 물고 다녔지.” 석탄 산업이 활황이던 시절 탄광촌에서 전설처럼 전해져오던 이야기다. 그때 탄광촌을 어슬렁거리는 개는 많았어도 고양이는 드물었을까. 궁금한 마음을 안고 태백시 상장동 남부마을을 찾아가본다. 마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광부들을 그린 대형 벽화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요즘 각 지자체에서 경쟁적으로 그려 넣는 벽화는 예쁘고 귀여운 그림이 대부분이지만, 남부마을에서는 탄광마을의 역사를 담은 그림들이 주종을 이룬다. 황금을 뜻하는 벽화의 샛노란 바탕색은 과거의 영화로운 시절을 상징하는데, 여기에는 쇠락해가는 마을에 희망을 불어넣으려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마을의 맥락과는아무런 연관 없이 예쁘기만 한 그림보다, 내가 사는 골목에 내 동네의 이.. 2013. 4. 8.
길고양이 따라 10년, 책이 된 '길고양이 통신' 누구나 사는 동안 잊지 못할 인연을 만납니다. 저에게는 2002년 7월 만난 ‘행운의 삼색 고양이’가 그랬습니다. 고양이를 좋아했지만 그때만 해도 집에서 함께 살 수 없었기에 길고양이를 따라다니게 되었고, 그렇게 만난 길고양이들과 함께한지 벌써 10년이 훌쩍 흘렀습니다. 이번에 펴내는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은 그 10년간의 이야기를 담은 책입니다. 이 책은 원래 2007년 1월 펴낸 첫 번째 고양이책 『나는 길고양이에 탐닉한다』(갤리온)의 개정판으로 준비할 예정이었습니다. 2012년 타이완에서 번역 출간된 『작업실의 고양이』보다 첫 번째 책이 먼저 번역 제안을 받았지만 고사했던 것도, 사진에세이에 걸맞은 개정판을 내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10년간 변화해 온 길고양이 동네 이야기를 담다 보니 아.. 2013. 4. 5.
고래벽화마을에서 만난 길고양이 고래와 고양이 벽화가 사이좋게 어우러진 마을이 있다. 울산 야음동 신화마을이다. 1960년대 울산화학공단이 조성되면서 생긴 이주민들이 모여 정착한 마을인데, 장생포 고래문화특구가 가깝다는 지역 특성을 반영해서 마을을 관통하는 큰길에 고래를 그려 넣거나 고래 조형물을 설치했다고 한다. 마을 곳곳에서 이렇게 고래 조형물을 볼 수 있다. 마을에 벽화가 그려진 건 '고래를 찾는 자전거'라는 영화의 배경지로 이곳이 등장하고, 또한 2010년 마을미술프로젝트 대상지로 선정되면서부터였다. 프로젝트가 끝난 뒤에도 울산 지역의 화가들이 큰길 양쪽으로 이어지는 골목에 새로운 그림을 채워 넣으면서 벽화가 늘어, 현재 벽화골목만 18개에 달한다. 고래마을로 유명하지만 고양이 그림도 쏠쏠하게 접할 수 있고 길고양이도 종종 만날.. 2013. 4. 4.
매섭게 꾸지람하는 길고양이 길고양이 무리에서 다툼이 있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대개 위협적인 울음소리를 내며 엉겨붙기 마련인데 울산에서 만난 이 고양이들은 싸우는 모습이 사뭇 달랐습니다. 투닥투닥 앞발질 대신 말로만 싸우는 길고양이는 드물게 보네요. 한쪽이 입을 둥글게 모으고 상대방을 몰아붙이며 뭐라뭐라 야단을 칩니다. 입을 둥글게 모으고 "오오옹~" 하며 톤을 높여 울리는 울음소리가 사이렌소리처럼 요란합니다. 상대방의 꾸중에 한 마디 대꾸할 법도 한데, 카오스 고양이 쪽이 뭔가 크게 잘못했는지 대꾸도 하지 못하고 눈도 맞추지 못한 채 그저 꾸지람을 듣고만 있습니다. 사람이 다가오면 달아나는 것이 보통인데, 두 마리 고양이의 대치상태가 길어지다 보니 카오스 녀석도 쉽사리 달아날 수 있을 것 같지 않네요. 카오스가 힐끗 이쪽을.. 2013. 4. 1.
아슬아슬한 길고양이 전망대 노랑둥이 길고양이 한 마리가 담벼락 아래를 조심스럽게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발밑에 뭔가 눈길 가는 거라도 있는 모양입니다. 조심조심...목을 쑥 빼고 아래를 기웃기웃합니다. 조그만 벌레의 움직임에도 엉덩이를 들썩들썩하며 달려들 준비를 하는 고양이들이다보니, 담벼락 위에서 뭔가를 주의깊게 바라보는 고양이를 발견할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조마조마해집니다. 지대가 층층이 높이가 달라 담벼락 높이가 유독 높습니다. 사진에 나오지 않은 높이까지 감안하면 고양이 스무 마리는 족히 서 있을 만한 높이입니다. 사람 눈에는 아슬아슬해 보이지만 담벼락이 워낙 높다보니 누군가 쉽게 다가올 염려도 없고 위협을 끼칠 일도 적어 마음놓고 내다볼 수 있습니다. 무심코 지나치면 보지 못할 그곳에도 길고양이는 있습니다. 또랑또랑한 .. 2012. 4. 5.
노랑아줌마와 길고양이 미노, 꼭 닮은 한 쌍 밀레니엄 일족의 터줏대감인 노랑아줌마 곁에, 어느덧 부쩍 자란 미노도 살그머니 머리를 내밉니다. 노랑아줌마 뒤를 쫄래쫄래 따라다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노랑아줌마 몸집보다 살짝 커지려고 하네요. 그윽한 부비부비로 아는 척을 해봅니다. 꼬리 크로스! 서로 냄새를 맡고는 의례적으로 하는 몸 인사지만, 마치 사람으로 치면 하이파이브를 날리는 듯한 재미있는 자세가 되었네요. 노랑아줌마의 초록눈과 미노의 금빛 눈동자가 잘 어울립니다. 고양이 동상처럼 떡 버티고 선 미노의 모습이 의젓하네요. 그래도 수컷 어른이라고 노랑아줌마를 지켜줄 모습이 든든해 보입니다. 그렇게 길고양이 동네는 고양이들을 통해서 면면히 이어져 가겠지요. 2012. 4.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