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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제품 | 전시 | 공연

사진으로 소원을 이뤄주는 마법의 지니 - 정연두전

by 야옹서가 2003. 11. 5.

Nov 05. 2003
| 아직 전시 오픈 전인데 잘못 들어왔나 싶을 정도로, 서교동 대안공간루프에서 11월 19일까지 열리는 정연두 개인전의 첫인상은 썰렁하기 그지없다. 발 밑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만큼 캄캄한 지하 전시장에는 어떤 작품도 걸려 있지 않고, 슬라이드 프로젝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만 한쪽 벽에 비칠 뿐이다. 어둠에 눈이 약간 익은 뒤에야 눈에 띈, 등받이 없는 의자들은 마치 소극장 무대에 들어선 듯한 느낌을 준다. 그리고는 끝, 정연두는 아무 설명도 없이 ‘작품’을 감상하러 온 관람객의 허를 찌른다. 단순한 마술의 원리가 보는 사람의 눈을 홀리듯, 그의 이번 작품 역시 형식은 간결하지만 그 메시지만큼은 가볍지 않다.

시공간을 훌쩍 뛰어넘은 마술적 상상력
 지난 2001년 ‘보라매댄스홀’전으로 대안공간루프와 첫 인연을 맺은 정연두는 이번 전시에서 ‘내사랑 지니(Be Witched)’연작을 선보였다. 여자 마법사가 주인공인 1960년대 미국 TV드라마 ‘내 사랑 지니’에서 착안한 연작사진은 타인의 꿈을 사진 속에 담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번 전시에 소개된 사람들의 꿈은 모두 13가지. 이번 프로젝트를 위해 작가는 한국, 중국, 일본, 미국, 네덜란드, 터키 등 6개국 남녀 13명과 인터뷰한 후, 그들의 현재 모습과 미래의 꿈을 교차시킨 사진을 대조했다.

예컨대 분홍 모자에 앞치마를 두르고 배스킨라빈스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서울의 소녀는, 어느 순간 눈보라치는 설원에서 썰매개와 함께 사냥 준비를 하는 에스키모 처녀가 돼 있다. 아이스크림 진열대가 사라진 자리에는 이글루가 등장하고, 소녀가 쥐었던 막대걸레는 예리한 사냥용 창으로 탈바꿈한다. 한편 교실에 우울한 모습으로 서 있던 동경의 한 소년은 답답한 교복을 벗어 던지고 사방이 확 트인 산 정상으로 순간이동해 아침햇살을 받으며 자유를 만끽한다. 이밖에도 서빙을 하던 이스탄불의 청년이 수학선생님이 되고, 북경의 한 주점의 무명가수는 팝 스타가 된다. 


이 같은 변신을 위해 정연두는 처음에 모델의 현재 모습을 찍고, 의상과 소품, 촬영장소만 달리한 후 처음과 같은 포즈로 두 번째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찍은 현재와 미래의 사진은 각각 두 대의 슬라이드 프로젝터에서 한 스크린에 교차된다. 시간차를 두고 두 이미지를 교차시키기 때문에 영화 속 몰핑 기법처럼 ‘변신 전, 변신 후’의 모습을 부드럽게 이어 보여주는데, 포즈는 똑같이 유지된 상태에서 주변 상황만 바뀌기 때문에 마치 마술의 힘으로 변신한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소원성취’를 매개로 타인과 관계 맺기
그의 사진이 의미심장한 것은 모델이 입은 옷, 들고 있는 물건, 서 있는 장소의 공간적 맥락 등에 따라 동일한 사람이라도 전혀 다른 정체성이 부여된다는 점을 새롭게 인식시키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상대방의 모든 것을 평가하고, 그가 가진 꿈에 대해선 관심도 없는 세상이지만, 정연두는 낯선 타인에게 다가가 꿈을 묻고, 그 꿈을 사진으로나마 실현하도록 도우면서 타인과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다. 2001년부터 시작된 이 프로젝트는 이제 겨우 13명의 꿈을 담았을 뿐이지만, 작가는 앞으로도 전 세계 곳곳의 사람들이 지닌 꿈을 담아나갈 계획이다. 오프닝 크레딧에 소개된 작품명 ‘Be Witched’(2001- )에서 괄호 뒤의 빈칸이 보여주듯, 그의 마술은 아직 현재진행형인 것이다.

본 전시의 관람료는 무료이며, 오후 8시까지 개관한다. 문의전화 02-3141-1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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