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발행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팝업북을 구경해 볼까 싶어 느지막하게 영풍문고에 들렀다.
폐점 30분 전의 서점 풍경은 고즈넉하다. 그다지 분주한 맛은 없고, 그림책 코너에 주저앉아
떼를 쓰던 아이들도 집에 가고 없다. 계산대의 직원들도 슬금슬금 '다른 계산대를 이용해 주십시오'란
안내문을 내놓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책을 훔쳐 도망가는 사람들을 잡아내기 위해 입구에 서서 감시의 눈초리를 빛내는 아저씨만
혼자서 다리 아픈 줄도 모르고 서점을 나가는 사람들의 행색을 하나하나 지켜보고 있다.
그 아저씨를 볼 때마다 늘 궁금하다. 관상 보는 특별한 눈이 있어서 용케도 책 도둑을 잡아내는지
아니면 책 도둑의 얼굴은 어딘지 모르게 불안해 보이는 것인지.
사설이 길어지는데, 일단 그림책 서가 쪽으로 가서 앨리스 책을 찾아보았다.
출판계의 오랜 불황 속에서도 언제나 호황을 누리는 두 분야가 바로 아동서와 실용서 부문인데
이를 증명하듯 입구와 가장 가까운 곳, 찾아가기 쉬운 곳에는 늘 아동도서들이 꽂혀 있다.
견본도서가 개봉돼 있지만 다른 자리로 가져가지 못하도록 낚시줄로 묶어놓았다.
1. 팝업의 갯수
책은 두텁지만 장수는 총 6장 뿐이다. 이것을 양면으로 보면 12면으로 늘어나고,
각각의 면에는 소형 팝업그림이 붙어 있는 정도이다. 이걸 모두 합쳐 계산해 50여 장의 팝업이라고
표현하는 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좀 거창한 표현 아닐까 싶다. 조그만 소품 정도의 팝업을 제외하면
양면으로 크게 펼쳐지는 대형 팝업은 6컷 정도밖에는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서점에 실린
견본 그림은 위와 같이 두 페이지에 걸쳐 큰 팝업 그림이 펼쳐지는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에,
독자의 입장에서는 나머지 그림들도 역시 이렇게 거창한 규모일 거라고 충분히 오해할 수 있다.
출판사 측에서도 홍보할 때 아마 그 점을 노렸겠지만 그닥 유쾌한 일은 아니다.
2. 일러스트레이션
사실 존 테니얼의 펜맛이 살아있는 앨리스 일러스트레이션에 익숙해진 사람들에게는,
민숭민숭한 로버트 사부다의 그림은 그다지 친근감이 가지 않는다. 존 테니얼의 캐릭터에서
기본 형태를 빌려오기는 했지만 섬세한 펜 터치는 거의 제거해 버리고
컴퓨터 채색 느낌이 물씬 나는 밋밋한 느낌의 그림으로 대치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좀 더 펜의 느낌이 살아났다면...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이 책이 일단 팝업책이라는 점을 감안하고 다시 보자. 팝업 장치가 얼마나 기발하게
만들어졌는지 주목하다 보면, 펜터치의 아쉬움은 어느 정도 상쇄될 수 있을지 모른다.
또 채색화이기 때문에 그만큼 화사한 느낌이 드는 장점은 있다.
3. 팝업북의 재미
넥서스 출판사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팝업북의 작가 로버트 사부다는
1994년 <크리스마스 알파벳> 팝업북을 시작으로, <12일간의 크리스마스>, <오즈의 마법사> 등을
작업했으며,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로 케이트 그리너웨이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보도자료 내용처럼 '만드는 데 7년' 씩이나 걸렸을 것 같지는 않지만, 책을 펼치면 발딱 일어나는
입체그림들은 확실히 흥미롭다. 소형팝업 중에서도 앨리스가 토끼굴 속으로 떨어지는 장면을
구멍 속을 잡아당기며 들여다보아 경험하게 한다거나, 책장을 넘기면 앨리스의 목이 길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하는 장면은, 소형팝업도 충분히 재미있을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4. 가격
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책값이 많이 비싸다는 것. 팝업북임을 감안해도 3만 8천원은 좀 부담스럽다.
예스24에서 이 책의 원서가 할인판매 가격으로 약 2만 6천원에 팔리고 있음을 알면, 더욱 그렇다.
그래도 팝업북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한 권쯤 장만해보고 싶을 만하다.
5. 주관적이긴 하지만, 평점을 매긴다면 10점 만점에 7점 정도를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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