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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그림 속 숨은그림찾기의 즐거움-《장난기 많은 눈》

by 야옹서가 2004. 10. 27.
Oct. 26. 2004 | 무심코 벽에 묻은 얼룩을 바라보다가, 그 얼룩이 어떤 형태를 많이 닮았다고 느낄 때가 있어요. 또 하늘에 둥실 떠가는 흰 구름을 언뜻 보면 양떼 같기도 하고, 보드라운 깃털 같기도 합니다. 이처럼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똑같은 사물이 이렇게도 보이고 저렇게도 보이는 건, 모두 우리 눈이 부리는 조화랍니다.

《장난기 많은 눈》(줄리안 로덴스타인·멜 구딩 엮음|보림)은 이처럼 흥미로운 시각유희나 착시 현상을 다룬 이색적인 그림만 골라 엮은 책입니다. 1800년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그려진 이중그림 70여 점에는 저마다 독특하고 기괴한 분위기가 물씬 풍깁니다.

책장을 펼치면 이중그림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는 흑백그림 ‘아내와 장모’(1870)가 떡 버티고 서서 독자들에게 몸풀기, 아니 눈풀기를 시킵니다. 여자 한 명만 그려진 초상화일 뿐인데 왜 ‘아내와 장모’냐고요? 젊은 금발여성의 뒷모습으로 보였다가도 어느 순간 매부리코 백발 노파의 옆얼굴로 보이는 신기한 그림이기 때문이죠. 이는 전경과 배경이 되는 형상을 우리 눈이 서로 달리 받아들이기 때문입니다. 젊은 여성의 윤곽이 먼저 인식되면 노파의 얼굴은 배경 속으로 묻혀버리지만, 노파의 얼굴부터 인식하면 아내의 모습은 눈에 띄지 않게 되는 이치입니다.

첫 그림인 ‘아내와 장모’를 보고 눈치채셨는지 모르지만, 수록된 대부분의 그림을 이해하는 단서는 바로 제목 속에 함축돼 있습니다. 예컨대 단순히 제비꽃과 그 잎사귀를 묘사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에 붙은 ‘빅토리아 여왕과 알버트 왕을 포함한 9명의 인물 형상들’이란 제목은, 그림 어딘가에 여러 가지 형상이 숨어있음을 알려줍니다. 비단 이 그림뿐이 아닙니다. 여인의 틀어올린 머리카락 다발인 줄 알았던 것이 실은 세계지도였다거나,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윤곽선이 사람의 형태를 띠기도 합니다. 그림 속 숨은 그림 찾기가 어렵다면, 책을 거꾸로 돌려가면서 ‘위아래가 다른 그림’을 발견하는 것으로 워밍업을 해도 좋습니다.


그림 속에 감춰진 이미지나 여러 형태가 섞인 그림, 위에서 봤을 때와 뒤집어 아래에서 봤을 때의 모습이 전혀 다른 그림, 착시현상을 불러오는 그림 등, 평소 접해보지 못한 신기한 그림들이 우리 눈을 한껏 즐겁게 합니다. 입맞추는 남녀의 옆얼굴로 해골의 퀭한 눈을 표현한 ‘삶과 죽음’이란 그림은 단순히 이중그림의 재미뿐 아니라, 인생의 덧없음을 상징하는 표상으로 인용되기도 한답니다.

책의 서문에서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우리의 눈은 복잡하게 생긴 모양이나 서로 다른 모양 속에서 닮은 점을 찾아냅니다. 이렇듯 무엇을 보는 일은 바로 예술작품의 제작과 감상의 출발점입니다”라고 엮은이가 밝힌 바 있듯이 책 속 그림을 가만히 보다 보면, 그림 속에 숨은 또 다른 그림을 발견하는 즐거움은 물론, 예술작품 속에 숨겨진 의미를 발견하는 남다른 시각도 기를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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