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꼼 머리를 내밀었습니다. 1월도 다 지나간 요즘이건만, 철 지난 단풍잎은 아직도 나뭇가지 끝에서
떨어질 줄 모릅니다. 아직 이 세상에 무슨 미련이 남은 것인지 마지막 힘을 그러모아 나뭇가지에 매달린
단풍잎이 고양이 얼굴을 때리는 바람을 조금이나마 막아주면 좋으련만, 단풍잎도 제 목숨 챙기기에만
급급합니다. 잠시라도 긴장을 놓으면 발아래 세상으로 툭 떨어져, 그만 빛을 잃고 말 테니까요.
짝짝이가 화들짝 놀라 몸을 숨깁니다. 다른 고양이들과 달리 조심성이 많은 짝짝이는
인기척에 놀라 숨지만, 곧 호기심 어린 눈을 빛내며 머리를 쏙 내밀 것을 압니다.
지붕에서 내려올 줄 모르니, 귀여운 짝짝이 양말을 잘 간수하고 있는지, 그새
세월의 때가 묻었는지 제 눈으로는 살펴볼 수 없습니다.
그냥 가지 말고, 자기에게도 뭔가를 좀 달라는 것입니다.
고함소리가 커졌습니다. 먹이를 조르는 아기새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입을 크게 벌리며
짹짹 울어대듯이, 지붕 위로 올라간 고양이들도 자기 존재를 큰 소리로 알려서 뭐라도 먹을 것
타 내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두려움도 이기게 만드는, 생존을 위한 적응법입니다.
잠시 아래를 관망하던 짝짝이는 다시 고함을 지르기 시작합니다.
머물러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사납지 못하고 유순한 성격 탓에 지붕 위로 밀려난 것일 수도 있고,
잠시 마실 간 것일 수도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짝짝이가 지붕 위에 있던 것을 본 게
올 겨울만도 몇 차례 되니, 원래 있던 영역에서 밀려난 것인 듯하기도 합니다.
기운없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벌리고 우는 모습을 보니 길고양이에게도
세력 다툼은 참 피곤한 일이로구나,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파벌 싸움만큼이나
치열한 일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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