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 31. 2003 | 책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특별한 전시가 열려 눈길을 끈다. 사간동에 위치한 금호미술관은 2004년 2월 28일까지 아트링크와 공동기획으로 ‘사람을 닮은 책, 책을 닮은 사람’전을 개최한다.
책읽는사회만들기 국민운동의 후원으로 열리는 이번 전시는, 점차 사라져 가는 독서문화에 경종을 울리면서 손에 잡히는 친숙한 물질로서의 책을 보여주고 책 읽는 문화를 제고하려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특히 ‘그림 속으로 들어간 책’, ‘책에게 말 걸기’, ‘물 속에 지은 도서관’ 등 세 개의 소주제로 나뉜 본 전시에서는 눈으로 보는 책, 손으로 만지는 책, 읽고 즐기는 책 등 관람자의 적극적인 참여가 있어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 흥미를 유발한다.
보고 만지고 느끼는 책의 즐거움
다양한 지식과 경험의 정수가 응축된 물질로서의 책의 면모를 강조하는 1층의 ‘그림 속으로 들어간 책’ 구역은 책으로 소파와 책상을 만들거나, 이미 출간된 책의 텍스트를 재구성해 새로운 책을 편집하는 작품 등, 책 자체를 작품의 소재 뿐 아니라 재료로 적극적으로 도입한 작품들이 선보였다. 예컨대 헌책 8백여 권을 쌓아올려 책상을 만든 서해성의 작품 ‘망한 책방에서 가져온 기억’은 점차 퇴락해 가는 군소 서점의 운명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한편 고풍스런 도서관 벽면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강애란의 사진설치작품을 배경으로 놓인 김형석의 책상 앞에 앉아 몇 가지 절차에 참여하기만 하면, 관람자들은 새롭게 창조된 이 책의 저자가 될 수도 있다. 상자에서 문장이 적힌 종이 띠를 무작위로 꺼내 책 속에 붙이거나, 만화 빈칸에 떠오르는 대사를 써넣으면 책의 공동저자가 되는 아이디어 작품이다.
보다 폭넓게 해석된 책의 다채로운 형태를 보여주는 공간은 2층에 마련된 ‘책에게 말 걸기’ 구역이다. 손가락 만한 조그만 책에서부터 나무로 만든 책, 청테이프로 만든 책, 소인국에 떨어뜨린 걸리버의 책을 연상시키는 프라모델 책, 계란껍질 위에 글씨를 쓰고 꼬마전구를 넣어 불을 밝힌 ‘전등 책’ 등의 다양한 형식의 작품이 관람자를 기다린다. 잉크로 글자와 그림을 인쇄하는 대신 검은 쌀로 이미지를 표현한 이동재의 작품이나, 내셔널 지오그래피 잡지의 노란 책등을 찍고 실물보다 크게 확대해 마치 미니멀리즘 회화처럼 벽에 붙인 박명래의 사진은 단순하면서도 기발한 상상력이 돋보인다.
아이들의 천진한 상상력이 돋보이는 아트북
특히 기성작가들의 작품 틈새에 숨은, 아이들의 발랄한 상상력으로 만든 책들은 보는 이를 미소짓게 만든다. 열두 살짜리 소녀가 셀로판지와 금속 와이어를 이용해 만든 ‘마법의 책’이나, 택시라면 사족을 못쓰는 다섯 살 꼬마가 빈 피자상자를 프레임처럼 사용해 만든 ‘택시 책’은 어른의 눈으로 보아도 인상적이다. 이밖에도 지하1층에 마련된 ‘물 속에 지은 도서관’에서는 오아시스, 목욕탕과 같은 다양한 컨셉으로 공간을 구분하고 어린이책 출판사로부터 기증받은 책을 비치해 전시를 보러 온 어린이들이 편히 앉아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전시와 더불어 흥미진진한 부대행사도 열린다. 관람자들이 1층 전시장 한가운데 부려놓은 수백 권의 책 중에서 한 권을 골라 가져갈 수 있게 한 것. 관람자들이 책을 고르며 자신의 숨겨진 독서취향을 발견하고, 나아가 책읽기의 즐거움에 새롭게 빠져들 기회를 제공하는 희망의 이벤트다. 어쩌면 묻혀있는 책 더미 안에서 나만의 보물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본 전시의 관람료는 성인 5천원, 학생 및 단체 4천원이다.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6시까지(일요일은 11시 개관). 매주 월요일과 신정, 설 연휴기간에는 휴관한다. 문의전화 02-720-5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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