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an. 07. 2004 | 서교동에 위치한 아티누스갤러리에서는 1월 16일까지 정양희·정해찬의 구체관절인형전 ‘Deja-vu’전을 개최한다. 구체관절인형작가 정양희와 일러스트레이터 정해찬의 자작인형을 한 자리에 모은 이번 전시에서는 등신대에 가까운 대형관절인형 ‘삐에로’, 구릿빛 피부의 군신(軍神)인형 ‘아레스’ 등을 비롯해 총 13점의 창작인형이 소개된다. 1998년부터 4년 동안 일본 구체관절인형작가 요시다 료에게 사사한 뒤 국내 활동중인 정양희의 인형은 가수 리즈의 뮤직비디오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고, 정해찬 씨 역시 그룹 ‘러브홀릭’ 뮤직비디오에 인형을 선보였으며 2004년 개봉예정인 영화 ‘인형의 집’ 아트디렉터로 인형제작을 전담할 예정이다.
동화, 신화 속 인물을 현대적 감각으로 재해석해
이처럼 대중매체 속에서 창작구체관절인형이 주목받는 것은 획일적인 기성품 인형과 달리 비교적 큰 크기로 제작해 섬세함을 살린 묘사가 가능하고, 인간과 가장 닮은 외형을 지녔으면서도 낯선 신비함을 지녔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는 영원히 성장을 멈춰버린 소녀, 죽지 않는 인간, 조각에서 인간으로 변신한 갈라테아와 같이 태고로부터 전해져내려 온 신화와 동화의 환상세계가 고스란히 살아 숨쉰다.
특히 인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면서 작품 캐릭터에 맞춰 의상과 가발, 안구, 가구 등의 소품을 매치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마치 연극 무대를 꾸미듯 독특한 분위기로 연출함으로써 인형에 생명력을 불어넣었다. 붉은빛 액체로 물든 하얀 드레스를 입고 머리를 풀어헤친 채 두 팔을 늘어뜨린 ‘비애’, 마귀할멈 같은 도식적인 도상 대신 심리적 장애를 육화한 외다리 미녀의 모습으로 에고이즘에 빠진 백설공주의 계모를 재해석한 ‘에고이스트’ 등은 대표적인 예다.
하나의 주제, 다른 시선
또한 이번 전시에서는 하나의 주제를 놓고서도 남매지간인 두 작가가 서로 다른 방식으로 해석한 작품을 비교하며 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2인전이란 전시형식에서 파생된 장점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인데, 예컨대 ‘삐에로’라는 주제를 놓고 정양희는 벨머의 구체관절인형에서 착안한 등신대의 인형을 선보였다. 광대의 슬픈 운명을 적나라하게 표현하기 이전에, 평생 무표정이라는 가면을 쓰고 살아야 하는 공허함을 헐벗은 모습의 인간으로 상징화한 것. 동그란 허리관절과 흔히 볼 수 없는 가슴관절까지 제작해 우아하면서도 자유로운 자세 연출이 가능하다.
반면 정해찬의 시각으로 본 삐에로 인형은 보다 직설적이고 서술적이다. 고목처럼 딱딱하게 경직된 정해찬의 삐에로는 가면을 벗어도 여전히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문신처럼 새겨진 얼룩덜룩한 분장 흔적 위로는 큼지막한 눈물방울이 맺혀있고, 가슴에는 채 핏방울이 마르지도 않은 깊은 칼자국이 새겨져 있다. 그러나 왼손에 살짝 쥔 바늘은 스스로 상처를 극복하고자하는 의지를 보여준다.
기시감이라는 뜻의 전시제목에서도 연상할 수 있듯, 이번 전시는 인간의 내면에 공통적으로 존재하는 일종의 ‘원형상’이 사람마다 어떤 식으로 변용되는지 생각해보게끔 한다. 전시관람료는 1천 원이며, 관람시간은 오전 10시 반부터 오후 6시까지다(일요일 11시 개관). 문의전화 02-326-2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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