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다음/ 2005. 5. 17] 서울 관훈동 대안공간 풀에서는 2005년 기획초대전으로 13일~31일까지 조습(31)의 두 번째 개인전 ‘묻지마’전을 개최한다. 블랙유머가 담긴 연출 사진과 영상작업으로 사회적 부조리를 꼬집어온 조습은 5·18 민중항쟁을 비롯해 4·19 학생혁명, 5·16 쿠데타, 무장공비 침투 사건, 박종철 물고문 사건, KAL기 폭파사건 등 1945년부터 2005년까지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을 기록사진 형식으로 재연한 작품을 선보인다.
패러디 사진과 보도 사진의 구도가 혼재된 조습의 사진은 일종의 ‘유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외형을 띤다.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짬뽕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들은 전문 배우들이 고증에 따라 연기하는 드라마 ‘제5공화국’보다, 무명 연기자가 금발 가발을 쓰고 나와 어색한 연기를 펼치는 ‘타임머신’의 재연드라마에 가깝다. 실례로 5·18 민중항쟁,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을 재연한 일군의 등장인물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 미술가, 회사원, 미술평론가, 학교 선후배 등 작가와 가까운 일반인들이거나 혹은 작가 자신이다.
게다가 촬영 장소 역시 전문 세트장이 아닌 동네 체육관, 대중목욕탕, 학교, 동사무소, 카페와 클럽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공간이다. 예컨대 5·16 쿠데타를 선포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사진은 노래방에서, 질펀한 술자리가 박 전 대통령 피격으로 이어진 10·26 사태는 궁정동 안가가 아닌 갈비집에서 촬영됐으며, 박종철 물고문 사건은 손님들이 때를 밀고 있는(것처럼 연출한) 대중목욕탕에서 천연덕스럽게 재연됐다.
이처럼 비전문 배우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 가짜 피가 뒤범벅된 사진에서 풍기는 ‘연출된 어설픔’은 역사적 사건 속에 담긴 개인성과 일상성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빛바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사라져간 듯 보이는 사건들이, 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 속에도 견고하게 스며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장치인 셈이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역사적 퇴행과 강압적인 국가 이데올로기, ‘한국적 헝그리 정신’이 교차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은 한편의 씁쓸한 블랙코미디일 수도, 잔혹한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사진에서 유혈 낭자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에 대해 조습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군인’과 ‘살인’은 빠지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뒤 “한국의 근대화란 질문도 아니고 답도 아닌 어떤 것”이라며 관람객들도 각자의 시선으로 사진을 바라보며 해석해보기를 당부했다. 관람료 무료, 문의 02-735-4805.
5·16 쿠데타를 알리는 살벌한 풍경은 노래방에서 희화화된 장면으로 모사된다. ‘5·16 쿠데다’(2005)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왜곡된 발표로 국민의 분노를 샀으며 이후 의문사 규명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박종철 물고문 치사사건을 소재로 삼은 ‘물고문’(2005). 천연덕스럽게 때를 밀고 있는 뒤편 사람들로 인해 단순히 역사 속 폭력이 아닌 일상 속 폭력의 상징성이 강화된다.
사건의 진실은 미궁 속으로 사라진 KAL기 폭파사건을 소재로 한 ‘김현희’(2005). 당시 반 북한 정서를 강화시키는 선전 수단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마를린 먼로의 한국 위문공연을 소재로 한 작품. 금발 가발에 여장을 한 작가의 모습은 연출된 재연드라마 같은 형식으로 나타난다.
민주화 투쟁 중에 쓰러져 간 시민(‘의문사’, 2005)와 헝그리 정신의 표상처럼 각색된 육상선수(‘임춘애’, 2005)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특히 “간식으로 라면을 먹었다”고 말했다는 임춘애가 어느 순간 “라면만 먹고 뛴 의지의 한국인”으로 오도되는 과정은 한 개인이 ‘한국적 헝그리 정신’의 대표사례로 포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군의 이오이 섬 정복 장면을 패러디한 ‘정복’(2005). 한국전쟁을 계기로 부각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국 정세의 단면을 보여준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재연한 ‘80년 광주’(2005) 연작. 요즘 젊은이들이나 입을 법한 형광 티셔츠의 설정은, 폭력과 억압의 역사가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이어지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매개물로 작용한다.
조습은 첫 개인전 ‘나는 명랑을 보았네!’에서 사이비 종교 열풍, 우스꽝스러운 결혼문화, 반공 교육 등을 풍자하며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비주체적으로 살아가는 개인의 삶을 희화화한 작업을 선보인 바 있다. 이번 전시는 기존 작업에서 한 걸음 나아가 이러한 개인이 비주체적 삶을 살 수 밖에 없도록 만든 ‘역사적 사건’에 초점을 맞췄다. 빛바랜 신문 속에, 혹은 역사교과서 속에 묻혀있던 과거는 조습의 연출 사진 속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재구성된다.패러디 사진과 보도 사진의 구도가 혼재된 조습의 사진은 일종의 ‘유사 다큐멘터리’와 같은 외형을 띤다. 작가의 표현을 따르자면 “짬뽕 다큐멘터리”인 이 작품들은 전문 배우들이 고증에 따라 연기하는 드라마 ‘제5공화국’보다, 무명 연기자가 금발 가발을 쓰고 나와 어색한 연기를 펼치는 ‘타임머신’의 재연드라마에 가깝다. 실례로 5·18 민중항쟁, 박정희 전 대통령 피격사건, 무장공비 침투사건 등을 재연한 일군의 등장인물은 전문 배우가 아니라, 미술가, 회사원, 미술평론가, 학교 선후배 등 작가와 가까운 일반인들이거나 혹은 작가 자신이다.
게다가 촬영 장소 역시 전문 세트장이 아닌 동네 체육관, 대중목욕탕, 학교, 동사무소, 카페와 클럽 등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상적 공간이다. 예컨대 5·16 쿠데타를 선포하는 장면을 연상시키는 사진은 노래방에서, 질펀한 술자리가 박 전 대통령 피격으로 이어진 10·26 사태는 궁정동 안가가 아닌 갈비집에서 촬영됐으며, 박종철 물고문 사건은 손님들이 때를 밀고 있는(것처럼 연출한) 대중목욕탕에서 천연덕스럽게 재연됐다.
이처럼 비전문 배우와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공간, 가짜 피가 뒤범벅된 사진에서 풍기는 ‘연출된 어설픔’은 역사적 사건 속에 담긴 개인성과 일상성을 부각시키는 장치로 작용한다. 빛바랜 역사 속 한 장면으로 사라져간 듯 보이는 사건들이, 실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네 일상 속에도 견고하게 스며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시각적 장치인 셈이다.
상식적으로는 있을 수 없고, 있어서도 안 될 역사적 퇴행과 강압적인 국가 이데올로기, ‘한국적 헝그리 정신’이 교차하는 한국 근현대사의 단면은 한편의 씁쓸한 블랙코미디일 수도, 잔혹한 다큐멘터리일 수도 있을 것이다. 몇몇 사진에서 유혈 낭자한 장면이 종종 등장하는 것에 대해 조습은 “한국 근현대사 속에서 ‘군인’과 ‘살인’은 빠지지 않는 요소이기 때문”이라고 언급한 뒤 “한국의 근대화란 질문도 아니고 답도 아닌 어떤 것”이라며 관람객들도 각자의 시선으로 사진을 바라보며 해석해보기를 당부했다. 관람료 무료, 문의 02-735-4805.
5·16 쿠데타를 알리는 살벌한 풍경은 노래방에서 희화화된 장면으로 모사된다. ‘5·16 쿠데다’(2005)
“탁 치니 억 하고 죽었다”는 식의 왜곡된 발표로 국민의 분노를 샀으며 이후 의문사 규명 운동에도 큰 영향을 미친 박종철 물고문 치사사건을 소재로 삼은 ‘물고문’(2005). 천연덕스럽게 때를 밀고 있는 뒤편 사람들로 인해 단순히 역사 속 폭력이 아닌 일상 속 폭력의 상징성이 강화된다.
사건의 진실은 미궁 속으로 사라진 KAL기 폭파사건을 소재로 한 ‘김현희’(2005). 당시 반 북한 정서를 강화시키는 선전 수단이 된 사건이기도 했다.
한국전쟁 당시 마를린 먼로의 한국 위문공연을 소재로 한 작품. 금발 가발에 여장을 한 작가의 모습은 연출된 재연드라마 같은 형식으로 나타난다.
민주화 투쟁 중에 쓰러져 간 시민(‘의문사’, 2005)와 헝그리 정신의 표상처럼 각색된 육상선수(‘임춘애’, 2005)의 모습이 대조적이다. 특히 “간식으로 라면을 먹었다”고 말했다는 임춘애가 어느 순간 “라면만 먹고 뛴 의지의 한국인”으로 오도되는 과정은 한 개인이 ‘한국적 헝그리 정신’의 대표사례로 포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미군의 이오이 섬 정복 장면을 패러디한 ‘정복’(2005). 한국전쟁을 계기로 부각된, 한반도를 둘러싼 외국 정세의 단면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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