삵 한 마리가 대로변에 누워 있다.
"이제 그만 일어나, 자동차가 달려들지도 모르잖아."
귀에 대고 속삭여도, 녀석은 영원히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다.
길을 건너다 로드킬을 당했기 때문이다.
고양이과 동물 중에서는 길고양이와 가장 많이 닮은지라
삵을 보면 친근한 마음이 들곤 했는데...
포스터 속 죽은 삵을 보니 마음이 짠했다.
아직 사체 훼손은 심하지 않지만, 누군가 치워주지 않으면
곧 차 바퀴에 짓눌려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고 말 것이다.
작년 이맘때쯤 로드킬을 다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상영한다는 메일을 받았다.
2007인디다큐페스티벌 상영작 중 하나로 한 달 가까이 일민미술관에서 상영했지만,
다니던 회사에서 창간할 잡지 준비로 정신없던 무렵이라 가질 못했고 내내 마음이 쓰였다.
한데 이번에 하이퍼텍나다에서 정식 개봉한다니 마음의 빚을 조금은 덜 수 있겠다.
독립영화를 만드는 황윤 감독은 <어느 날 그 길에서> 외에도 동물원 동물을 소재로 한 <작별>,
멸종된 한국 야생동물의 흔적을 연변에서 찾아본 <침묵의 숲> 등 '동물 다큐 3부작'을 찍었다.
이번 극장 개봉에서는 <침묵의 숲>을 제외한 두 작품을 함께 볼 수 있다.
홈페이지는 www.OneDayontheRoad.com.
++++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 와서 덧붙여 적는다.
가끔 뉴스나 동물 다큐멘터리에 등장하는 로드킬 소식을 들으면 내내 궁금했다.
왜 새들은 날개가 있는데도 자동차에 치이는지,
제법 빨리 달린다는 고라니와 삵은 왜 차를 피하지 못하는지 ….
한데 로드킬 영화 <어느 날 그 길에서>를 보고서,
내 의문이 얼마나 인간 위주의 생각이었는지 깨닫고 얼굴이 뜨거웠다.
차를 타고 편안하게 달릴 때는 누구나 공포를 느끼지 못한다.
하지만 진정한 공포는 차에서 내려봐야 느낄 수 있다.
고속도로에서 시속 130㎞로 달리는 차 옆에 서면, 몸을 훅 빨아들일 듯한 기류가 느껴진다고 한다.
사람도 그 옆에 서면 다리가 후들거리는데, 바람을 타고 날아오르는 작은 새에게는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육중한 트럭이 달릴 때 기분 나쁜 땅울림 소리가 귓속까지 따라붙으면,
달리기 선수 고라니도 두려움을 느끼고 몸이 얼어붙는다.
결국 그들은 그렇게 차바퀴에 몸을 찢기고, 바람에 날려 사라진다.
인간을 위한 길이, 동물들에겐 죽음으로 향하는 길이 되고 만 것이다.
생태도로가 있다지만, 야생동물의 행동 반경에는 미치지 못해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로드킬의 심각성을 몰랐던 사람이라면, 꼭 한번 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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