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심 많은 길고양이를 만나면 잠시 걸음을 멈춘다. 처음 고양이를 찍을 때는 눈이 마주치는 순간 놓칠세라 달려갔지만, 이제는 한 박자 쉬고 천천히 다가가는 게 낫다는 걸 경험으로 안다. 나의 반가움이 처음 만난 고양이에게도 똑같은 감정으로 전해지길 바라는 건 욕심이다. 오히려 반가워하는 몸짓이 크면 클수록, 기뻐서 다가가는 속도가 빠를수록 고양이는 위협을 느끼고 먼저 달아난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찍을 때는 적당한 ‘밀당의 기술’이 필요하다. 다가가기는 하되 천천히, 녀석들이 부담스러워하지 않을 속도로만. 그렇다고 마음 둔 녀석들이 멀리 달아나는 걸 맥없이 보고 있을 만큼 소극적이지는 않게. 경계심 많은 길고양이를 안심시키면서 다가가는 요령은 ‘오리걸음’ 신공이다. 몸을 낮추고 체중을 실어 걷다 보면 무릎이 아파서 먼 거리를 이동할 수는 없지만, 거리가 가깝다면 괜찮은 방법이다.
그렇게 살금살금 움직이다 고양이와 눈이 마주친 순간, 나도 골목길 한쪽에 자리를 잡는다. 몸을 낮추고 엉덩이는 바닥에 붙이고 앉아 ‘네가 불편해한다면 더 쫓아가지 않을게’ 하고 마음속으로 신호를 보낸다. 내가 있는 쪽을 틈틈이 돌아보며 상황을 살피던 고양이가 창살 너머를 지긋이 보더니 ‘저기다’ 싶었는지 눈을 빛낸다. 순식간에 슬그머니 몸을 납작하게 숙이고 철문 아래로 기어들어가 버린다.
사람은 따라 들어갈 수 없지만 자신은 통과할 수 있는 장소를 찾았을 때 길고양이는 걸음걸이부터 달라진다. 몸을 낮추고 위축된 듯 걷던 자세도 위풍당당해진다. 창살 너머 공터로 기어들어가 내가 있는 자리를 다시 확인한 녀석은 아예 식빵 자세로 앉아 겨울 햇볕을 쬐고 있다. 고개를 갸웃하며 여유 있게 바라보는 눈빛은 ‘여기까지는 너도 못 따라오겠지?’ 하고 말하는 것 같다. 왼쪽 귀 끝이 잘린 것을 보면 TNR 고양이라 근처에 돌보는 분이 있을 텐데, 아마 밥 주는 사람 말고는 마음을 터놓지 않거나 그분들에게조차 거리를 두는 녀석일 확률이 높다.
억센 창살이 고양이와 나 사이를 가로막지만, 사진을 찍을 때 이런 구조물이 꼭 방해 요소로만 작용하는 건 아니다. 직선이나 곡선의 강한 모양 때문에 자연스럽게 고양이에게로 시선이 집중된다. 이를테면 창살 형태를 활용한 천연의 액자가 만들어지는 셈이다. 창살에 사로잡힌 길고양이의 모습을 통해, 인간 세상에서 여러 가지 제약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것도 수월해진다.
액자가게에서 맞춘 액자는 모양이나 색깔에 한계가 있지만, 거리에서 발견하는 이런 액자는 어느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녹슬어 떨어져나간 페인트 자국, 삭아 바스러지는 창살의 모습에는 인공적인 가공으로는 낼 수 없는 시간의 흐름이 담긴다. 그래서 길고양이를 찍으며 또 한 가지 배운다. 장애물로만 여겼던 창살도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활용하는지에 따라 쓰임새가 달라진다는 것을. 그건 반드시 길고양이 사진에만 국한된 깨달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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