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양이의 삶을 사진과 글로 담기 시작한지 올해로 어느덧 13년째다. 첫 길고양이책을 출간한 2007년부터는 세계 고양이 명소와 애묘문화를 취재하는 ‘세계 고양이 여행 프로젝트’를 병행하고 있다. 프랑스, 스웨덴, 핀란드 등 유럽 국가를 비롯해 애묘문화가 발달한 일본, 타이완의 고양이 명소를 꾸준히 한국에 소개하다 보니, 애묘인을 위한 ‘1박 2일 고양이 투어’ 프로그램쯤은 어렵지 않게 짤 수 있을 정도가 됐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이 가끔 묻는다. 어떻게 하면 가는 곳마다 길고양이를 만날 수 있느냐고.
국내외를 막론하고 낯선 지역에서 길고양이를 찾아야 할 때 1순위로 꼽는 장소가 있다. 조성 역사가 오래된 원도심 지역이나 골목 많은 주택가다. 길고양이를 만날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기도 하거니와, 허탕을 친다 해도 낯선 골목을 탐험하는 재미가 있기에 길고양이를 만나지 못한 아쉬움을 보상해준다. 그곳에는 길고양이뿐 아니라 그들에게 마음 주며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 길고양이와 인간의 공존 사례를 다양하게 발굴하고 싶었던 내게는 딱 안성맞춤인 공간이다.
나의 ‘주 활동 무대’에서 길고양이를 만나보자
하지만 이제 막 길고양이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사람에게는 따로 권해주고 싶은 방법이 있다. 해돋이 명소 추천받듯 길고양이 출몰 지역을 콕 집어달라 해서 다녀오는 것보다, 자신이 활동하는 지역의 길고양이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켜보는 일이다. 길고양이의 삶을 좀 더 깊이 이해하고 싶다면, 알지도 못하는 낯선 곳을 찾아가는 것보다 일상적인 공간에서 시작하는 게 좋다. 고양이 여행이란 개념조차 생소했던 시절 길고양이 통신 블로그를 개설하면서 ‘고양이 여행자의 일상여행기’라는 부제를 붙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일상적인 공간은 익숙해서 별 볼일 없는 곳이 아니라, 익숙하기에 더 많은 것들을 찾아낼 수 있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내 경우를 생각해보면
2002년 7월 ‘행운의 삼색 고양이’가 살던 종로 빌딩가 화단이 그랬다. 녀석을 내 인생의 첫 길고양이로 삼기 전에도 스쳐 지나가는 길고양이를 찍은 적은 더러 있었다. 하지만 녀석이 내게 특별한 고양이가 된 건 장기적으로 관찰과 기록을 시작한 첫 길고양이였기 때문이다. 행운의 삼색 고양이가 살던 종로 빌딩가 화단은 당시 취재를 위해 매주 다니던 동선에 포함되어 있었다.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가야만 하는 곳이 아니었기에 꾸준히 관찰할 수 있었고, 그 고양이가 어렸던 시절부터 어미가 되어 새끼를 돌보는 모습, 동료들과 어울려 살아가는 모습까지 오랜 시간 지켜보며 길고양이의 삶을 이해할 수 있었다.
사람 사는 동네라면 길고양이는 어디든 있다. 우리가 관심 있게 지켜보지 않기에, 혹은 그만큼 시간을 할애하지 않기에 쉽게 발견하지 못할 뿐이다. 부담 없이 자주 찾아갈 수 있는 공간에서 ‘일상 여행자’의 마음으로 길고양이 관찰을 시작해보자. 직장 근처도 좋고, 집 근처도 좋다. 익숙한 동네에서 충분히 길고양이의 삶을 지켜본 연후에 새로운 곳을 탐험한다 해도 늦지 않다. 마음을 나눌 친구가 사는 곳은 가까울수록 좋다. 그 친구가 길고양이라면 더더욱.
'[고경원의 길고양이 통신] > 고양이여행자의 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양이가 공사장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 (3) | 2016.03.01 |
---|---|
액자 속으로 들어간 고양이 (0) | 2015.03.09 |
하루 10분의 위로 (1) | 2015.03.06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