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을 여행하면서 인상 깊었던 풍경 중 하나가 도심 곳곳에 위치한 묘지였다. 닛포리 역에 내려 야나카 재래시장으로 가는 길 초입부터 묘지가 있고, 마네키네코의 발상지인 고토쿠지 안에서도 묘지가 있어 검은 옷을 입고 제를 지내러 찾아온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고양이를 만나러 갔던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 역시, 주요 관광지에서는 조금 떨어져 있다고는 하나 여전히 도시 안에 제법 큰 규모로 자리 잡고 있다. 한국에서는 묘지나 납골당은 도시 외곽으로 나가서야 볼 수 있고, 어쩌다 납골당이라도 들어설라치면 ‘(땅값 떨어지게) 혐오시설이 웬 말이냐!’ 하며 벌떼같이 일어나 반대하기 일쑤니, 사뭇 대조적인 풍경이다.
어쩌면 일본에서도 지금 같은 위치에 묘지가 조성되기 전에는 그런 반발이 있었을지 모르지만, 현재는 묘지가 생활공간 속에 깊이 파고들어 있다. 2년 전인가 제주도를 여행할 때 농지 근처에 나란히 누운 봉분을 보고 ‘여기서는 사람 사는 곳 가까이 묘지가 있네’ 하고 의아해했는데, 어쩌면 사람들 속으로 걸어 내려온 묘지란, 섬이라는 지역적 특성과도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묘지라면 일반적인 관광 코스와는 거리가 멀지만, 한때 ‘묘지 기행’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했던 내게는, 고양이도 보고 묘지도 볼 수 있는 기회였다.
요코하마 외국인 묘지는 미나토미라이선 ‘모토마치-주카가이’ 역에서 내려 항구가 보이는 공원 쪽으로 쭉 내려오면 보인다. 19세기 요코하마 개항 무렵을 전후로 일본에서 활동했던 외국인 4500여 명이 이 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사망한 외국인의 출신 국가만도 40여 곳에 달한다니, 당시의 교류 상황을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외국인 묘지의 입구에 들어서면, 오른편에 조그만 ‘외국인 묘지 자료관’이 있다. 명색은 자료관이지만, 수위실보다 조금 더 큰 정도의 작은 방이다. 그렇다고 아무도 보살피지 않아 방치된 곳인가 하면 그런 것 같지는 않고, 에어컨 설비가 잘 되어 있어 무덥고 습한 밖으로 나가기 싫을 정도였다. 교회처럼 어둑어둑한 자료실 안에는 조그만 스테인드글라스만 빛나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예수도 하느님도 아닌, 십계명판을 든 모세의 모습을 스테인드글라스로 새겨 넣었을까. 모세 역시 이방인이었기에 그랬을까? 자료관에서 눈길을 끈 것은 개항 당시의 풍경을 그린 우키요에 모사본이었는데, 다소 기괴하게 묘사된 외국인의 모습만 본다면 당시 일본인들이 외국인을 외계인처럼 느끼지는 않았을까 싶기도 하다.
묘지 입구는 잠겨 있어 깊숙한 곳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입구에 서서 내부의 전경을 훑어볼 수 있다. 자료관 안에서도 닫힌 창 너머로 묘지 내부를 볼 수 있었다. 십자가 뒤로 보이는 건 얼룩 고양이. 저기서 잠시 머뭇거리다가, 오른편 쓰레기통 위에 몸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잠을 청했다. 평소에는 사람들이 자주 드나들지도 못하고, 숨을곳도 많은 데다가, 근처에 관광지와 주택가, 공원까지 있어서 길고양이 입장에서는 천국인 셈이다. 최소한 잠자리와 쉴 자리는 확보할 수 있으니.
동그랗게 몸을 말고 누운 녀석의 등에 자잘하게 박힌 무늬를 보니 언뜻 벵갈고양이의 피가 섞인 듯도 하다. 일본 토종 고양이들은 꼬리가 짧은데, 한국에서 흔히 보는 토종 고양이와 달리 상당히 다양한 품종의 길고양이가 어슬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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