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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고양이 스밀라

목을 빼고 바라본다

by 야옹서가 2006. 9.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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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밀라가 방충망에 매달리다가 추락할까 싶어서 대개 창문을 닫아둔다. 그래도 환기는 시켜야 하니까 가끔 열긴 하는데, 창문 여는 소리가 나면 휙 뛰어올라서 최대한 방충망 쪽으로 머리를 들이밀고, 다시 닫을 때까지 저렇게 망부석처럼 앉아 있다. 가끔은 창문을 닫으려고 하면, 못 닫게 하려는 것처럼 기를 쓰고 머리를 디밀어서 당혹스럽다. 평소에는 고집스런 면을 못 느끼겠는데, 자기 주장을 할 일이 있으면 꼭 하고야 만다. 그래봤자 몸이 작으니까, 두 팔로 번쩍 안아서 옮겨버리면 꼼짝 못하지만. 내가 고양이였다면, 매번 목적 달성을 제대로 못하고 끌려내려오는 상황이 내심 억울할 것 같긴 하다.

지금 스밀라가 앉은 자리는 예전에 소형 캐비닛을 놓았던 자리다. 한동안 스밀라의 전망대로 썼던 물건이지만, 책꽂이 꼭대기에서 아래로 뛰어내릴 때마다 뒷다리 무릎이 자꾸 캐비닛과 부딪쳐서 퉁퉁 소리가 났었다. 그게 반복되면 분명 관절에도 좋지 않을 것 같아서 치워버렸다.

환기를 하는 동안에는 스밀라의 동태를 지켜봐야 하니까, 때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스밀라를 구경하거나, 그동안 사진을 찍는다. 스밀라가 창밖을 내다보는 모습을 찍은 사진이 좀 많은 건, 그런 이유도 있다. 내가 뒤에 도사리고 서서 '어둠의 포스'를 내뿜거나 말거나, 스밀라는 부동자세로 앉아서 얼굴을 쭉 빼고는 하염없이 아래를 내려다본다. 고양이의 시력이 얼마나 좋은지 알 수 없지만, 뭔가 흥미로운 것을 발견한 것 같기도 하다. 아니면 집으로 돌아가는 초딩떼가 지저귀는 소리에 귀를 기울인 것이거나. 골똘히 생각하거나, 뭔가를 그리워하는 것 같은 얼굴로 앉아있는 스밀라를 볼 때마다 애틋하다. 어린아이가 좋아하는 것에 집중할 때 입술을 살짝 열거나 볼을 부풀리듯이, 스밀라는 동그란 볼을 하고 얼굴을 내밀어 바람의 냄새를 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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