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몸이 낙엽색과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는지, 주변에 몸을 가릴 아무 것도 없는데도
노랑둥이 길고양이는 무심히 낙엽더미 위에 누워 잠을 청합니다. 완벽한 보호색입니다.
꼭 오래 모자를 쓰고 있다가 벗어서 눌린 머리카락처럼 납작하게 머리를 덮고 있습니다.
두 볼이 두툼한 것을 보니 이 지역의 대장냥이로 오래 살아온 녀석입니다.
오랜 길 생활에 익숙해진 길고양이 특유의, 관록이 느껴지는 얼굴입니다.
콧잔등에 난 자잘한 상처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네 길고양이와 앞발 훅을 주고받은
전적이 있음을 보여줍니다. 기력이 달려 패배하기라도 한 것인지, 한쪽 눈에 흐르는
찐득한 눈물이 새삼 눈에 밟힙니다. 아파서 흐르는 눈물인지, 닦아줄 사람이 없어 그대로 두었는지,
그 눈물이 마를 때까지 고양이는 묵묵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몸을 웅크립니다. 동그랗게 몸을 말고 고개를 숙인 모습이 몹시 고단해 보입니다.
오늘은 도망가는 데 기력을 쓰기보다 낙엽에 몸을 숨기는 쪽을 선택한 모양입니다.
저도 가끔은 그렇게 어딘가에 콕 박혀있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늙은 길고양이에게는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안심이 되지 않았던지, 늙은 길고양이는 낙엽 은신처에서 몸을 일으켜 저를 한번 보고는
한동안 뭔가 말하고 싶은 얼굴로 서 있다가, 저 멀리 사라집니다. 낯선 여행지에서의
단 한번뿐인 만남, 앞으로는 다시 마주칠 일이 없겠지요.
길에서 만나는 인연들 중에는 어리고 귀여워 사랑스런 마음에 웃음 짓게 되는 고양이가
있는가 하면, '이제 다시 볼 수 없겠지' 하는 마음에 아련해지는 고양이가 있습니다.
사람을 경계하고 인상이 그리 부드럽지 않은, 늙은 고양이들은 더욱 그렇습니다.
집고양이는 나이를 먹어 어린 시절의 귀염성이 사라진 뒤에도, 함께 살아온 정이 있기에
가족으로 사랑받지만, 나이 든 길고양이는 길고양이에 대한 매서운 시선에다 '인상까지 나쁘군'
하는 평까지 짊어지고 남은 생을 살기에, 얼굴에도 그 고단함이 더욱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사는 게 참 쉽지 않구나' 묵묵히 저를 보는 고양이의 얼굴에서 그런 표정을 읽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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